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의 여왕으로, 1755년 11월 2일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 유럽 왕실 사이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와 결혼하게 된다. 1770년에 결혼하여 프랑스 궁정으로 들어간 그녀는 초기에는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그녀의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과 정치적 무관심 때문에 점차 여성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비춰지게 된다.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 이전의 궁정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파리 근교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화려한 연회를 열고, 사치로운 의상을 입고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생활은 일반 대중의 반감과 비난을 초래했고, 그녀의 이름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전해지면서 그녀의 이미지가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이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속한 것인지의 여부는 역사적 논란거리이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앙투아네트의 처지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 이후, 군중들은 궁전을 습격하였고, 왕실은 파리로 옮겨졌다. 루이 16세와 그녀는 권력을 잃고 그의 지지자들로부터 고립되었다. 이후 그녀는 1791년에 탈출 시도를 하였지만 실패하였고, 결국 1792년 왕정을 대체한 공화국 정부에 의해 체포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793년 10월 16일 프랑스 혁명 재판소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녀의 처형은 혁명의 상징이 되었고, 그녀의 이야기는 후에 영화와 문학작품을 통해 여러 번 재조명되었다. 오늘날 앙투아네트는 단순히 사치와 권력의 상징으로만 기억되지 않고, 복잡한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의 삶과 죽음은 18세기 유럽의 격변기를 반영하며, 역사적 연구의 중요한 주제로 남아 있다.